만인보 29
이번 시집 또한 광주의 피 낭자하다. 전 30권 중 마지막 4권이 2010년에 한꺼번에 나왔는데 27권, 28권, 29권 계속 광주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을 거의 광주로 채우고 있는 것은 시인이 왜 『만인보』 연작을 시작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시인이 ‘만인보’를 기획을 한 것은 1980년 감옥에서였다. 당시 시인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연루 혐의로 경기도 성남 육군교도소 특별사동 독방에 수감되었다. 광주 학살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1980년 5월 17일이었다. 시인이 갇힌 곳은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이 쓰던 방이었다. 창도 없고 40촉 전등도 자꾸 꺼지는 독방. 관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외할머니, 할아버지처럼 과거의 얼굴 하나하나가 현재화됐지요. 그들에게 가기도 하고, 그들이 오기도 하고. 살게 된다면 꼭 한번 모두를 시로 그려야겠다 했’(『한겨레21』807호)다. 그렇게 시작한 『만인보』. 작품을 구상하면서 시인은 힘을 얻었고 우리는 전례 없는 대작을 문학사에 등재하게 되었다.
광주를 다루되 이전 시집과 달라진 것이 있다. 이전 시집이 ‘그날’의 투쟁에 나선 ‘당사자’들을 직접 그리고 있다면 이번 시집은 당사자와 함께 뒤에 남겨진 ‘가족’들의 생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족의 범주도 다양하다. 형제, 자식, 부모 같이 피를 나눈 가족은 물론 애인이나 동무처럼 뜻을 나눈 가족까지 포함한다. 이를테면 ‘광주일고 졸업 / 늦었으나 / 재수 삼수 대학생이 될 꿈 그따위 꿈 작파하고 / 총 든 시민군의 영광’(「아우 홍순권」)에 동참하여 5월 27일 새벽까지 도청을 지키다 아우 홍순권이 죽자 ‘아버지도 떠나셨다 / 어머니도 뒤이어 떠나셨다 / 빨갱이 부모라는 이름 붙어 / 빨갱이 집구석이라는 이름 붙어 / 밤마다 / 순권아 / 순권아 / 순권아 / 방 안에서 네 이름 부르다가 눈감으셨다 // 내가 한 일이라고는 / 어머니 뜬 눈을 감겨드린 것뿐’(「형 홍순례」)이라며 형 홍순례는 자신을 비겁자로 몰아가거니와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살아야 하는 세월을 한탄한다.
애인의 사연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전남대 화공학과 2학년 / 스무살이었다 / 여수고교 우등생으로 / 광주 유학’(「서호빈」)하여 공부밖에 모르다가 숨진 서호빈, ‘그 서호빈의 주검 / 그 주검 찾아다녔지 / 기어이 찾아냈지 / 찾아내어 / 소나무 관에 넣었지 / 태극기 덮었지 거기 서 있었지 // 소리 죽여 울었지 / 호빈씨 / 호빈씨 / 나 어떻게 살어’ (「노영희」) 통곡하는 노영희. 광주는 젊은이들의 사랑도 갈라놓았다. 부부의 사별은 더 가슴을 친다. ‘계림동 / 광주고등학교 숙직실 / 숙직 당번 양동선 / 서무과 임시직원이었다가 / 정식직원으로 발령이 났다 / 이게 웬일 / 마흔다섯살의 경사였다 / 몸속 기쁨 가득’ (「양동선」)차 가슴 펴고 살아보자 했으나 학교 안에 공수 들이닥쳐 마구 쏴대는 바람에 이승을 떠난 남편 양동선 때문에 ‘무슨 체면 / 무슨 염치 / 다 버’리고 ‘당장 어린것들 입입입에 새우젓 하나에 찬밥 데워 먹’(「신영숙」)는 신세가 된 아내 신영숙의 삶은 눈물겹다.
학살당한 가족들의 죽음이 너무 억울해 남겨진 가족들은 울화병 들어 병마에 시달리거나 자학하거나 죽거나 했다. ‘죽음은 너울가지로 죽음 부르는지 / 어머니 울화병 들어 / 아들의 죽음을 이어 죽었다’ (「김함옥의 무덤」). 어디 죽음뿐이랴.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게 무너져갈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 아들 잃은 사람 / 그렇게 / 남편 잃은 사람 / 그렇게 / 아우 잃은 사람 / 그렇게 그렇게 / 약혼자 잃은 사람들 모여 / 5월의 유족회 이루었다 / 유족회 회장이 되어 / 경찰 끄나풀로 몰리고 / 안기부 앞잡이로 / 손가락질받기도 하며 / 사실이기도 하며 / 사실 아니기도 하며’(「박찬봉」) 학살자에 맞서 싸웠다. 아들이 살아 있을 때는 그저 어머니이고 졸음 많은 마누라일 뿐이었던 재학이 어머니가 아들을 잃자 ‘애통의 어머니’ ‘분노의 아낙’으로 변모하여 그 누구보다 거세게 싸우는 과정은 우리의 민주화가 어떻게 진전되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재학이 어머니
광주상고 문재학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
아들 살아 있을 때는
어머니일 뿐
아낙일 뿐 앉으면 간득이는 아낙일 뿐
호남선 열차 한번 탄 적 없는
재학이 아버지
마누라일 뿐 졸음 많은 마누라일 뿐
아들 죽은 이래
애통의 어머니
분노의 아낙
몇해 동안
추도식도 금지되어
묘지 제사도 지내지 못했다
5월 27일
그날밤이면
신새벽같이
산등성이 넘어
산골짝 건너
남몰래 무덤에 가
도둑제사를 지냈다 잠 없어졌다
플래카드를 펼쳤다
살인마 전두환 때려죽이자
싸우는 여인이 되어
시내로 나가 외쳤다 자더라도 눈뜨고 잤다
제주도로 실려가고
강원도로 실려가고
전북 남원 산골로 실려가 내팽개쳐졌다
유치장에 갇혔다 소리질렀다
다시 플래카드를 펼쳤다
전두환 찢어죽이자.
세계적인 시인 고은의 만인보 가 전30권(총 작품수 4001편)으로 완간되었다. 1980년 육군교도소에 갇혀 구상을 시작해 만 30년 만에, 1986년 1권을 출간한 이래 25년 만에 대장정의 막을 내린 것, 대미를 장식하는 27~30권은 주로 5·18 광주항쟁으로 채워졌다.
세계 시단에서도 ‘오늘날의 문학에서 가장 비범한 기획’(Robert Hass)이라 평가받는 만인보 는 말 그대로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봇물처럼 터져나온 ‘사람들에 관한 노래’가 대하(大河)를 이루어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파도소리에 우리는 경탄할 수밖에 없다. ‘빠리의 호적부’와 겨루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던 발자끄에 빗대어 말하자면 가히 ‘시로 쓴 한민족의 호적부’라 이를 만하다. 시인이 선사해준 ‘세상의 삶들, 희로애락들, 세상의 온갖 사연들, 세상의 죽음들’에 귀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국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기념비적인 역작의 탄생과 완성의 순간에 동참하게 된다.
계남수의 비
문신을 위하여
적
기영도
김생 자손
형 홍순백
낭랑클럽
아우 홍순권
장하인
조행권
조병상
부자
이또오 찌꼬오
이천균
박상현
정지영
이구영
이강수
연날리기
어느 형제
어느 해방둥이
이금재
강명화
그 할머니
탄실
유영선
리진
유동운
만덕
유동인
짐치통
오세현
북창 이경남
염행렬
일심이 아버지
양동선
만리고개
신영숙
보킁고개
안종필
백찬원 영감탱이
서호빈
정순왕후
노영희
서호빈 아버지
남이의 시
그 동백꽃
처녀 등명
종필이 녀석
새 노래
조덕순
김완봉
임씨
임씨 열녀문
모란꽃
완봉이 어머니
창대 장복
이희성 2
김완봉 시신
환관 조맹수
용표
김재화
김정
화산 이씨
김함옥의 무덤
마루따 오진수
김형관 어머니 1
김형관 어머니 2
오준
나안주
공지관
나흥수
남은 아이들
쉬파리떼
박금희
그 가족
광복군 부부
왕씨의 길
얌전이
박민환
치사한 사건
박세근
인배
인배 어머니
만경부대 곽섬동
박인천
박창권
박찬봉
심동선
심월용
신선로 뒤풀이
안두환
안두환 마누라
어느 부자
안병복
노송동 사건
안병태
양인섭
아파트로 이사 가는 날
창근이
어느 고아의 길
한듕록
윤재식
배용희
윤형근
이경호
이북일
홍순언
이성자
물가에서
이재술
연꽃
이종연
소금덤
임수춘
김씨
그 장학사업
그 소녀
장례길
향수
임은택
두 아낙
달빛
장방환
양관 풍류
전영진
어머니
기건
전정호
전정호 마누라
박순
전계량
고시레
제삿날 밤
아기 하나
젖맛 이전
어느 산수화가
정찬용
김금숙
꿈
단칸방
한 경지
정학근
이귀님
꽃신
그 아이
소걸음
조남신
장한수
조대훈
조천호
심원지
조사천
정동순
다시 조사천
진정태
문재학
재학이 어머니
민병대
박병규
이필구 영감
박성용
박용준
한 친구가 찾아왔네
박진홍
어떤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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